2014年5月28日水曜日

140528





요시에쨩 이라는 아이가
참 재미있다. 안경을 그리고 싶었는데,
잠이 와서…..

2014年5月27日火曜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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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나도 일본으로 떠나던 날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줄까 노이야.

오히려 그 전날밤까지는 미루고 미루던 가방과 짐들을 싸느라 정신이 없었고,
당일 새벽에 아빠가 나를 깨웠어. 이미 휴대폰을 해지한 나는 너말고도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 할 길도 없이 아침에 씻고 준비해둔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에
아빠 차가 있는 지하로 다같이 내려갔다. 아빠가 미리 내려가서 히터를 틀어놓는다 했거든.

짐만 밑에까지 들어주고 그날 아침 학교에 가야했던 윤이는 일어나자마자 짐꾼을 한 탓에
까치집 머리와 츄리닝 차림 그대로 "누나 도착하면 연락해리."라고 인사를 했어.

학교 발표가 나던 날 아침에 동생은 동생학교가 아침조회때 학생들 휴대폰을
압수하는 학교인지라,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교무실에까지 가서 전화를 걸어
내게 어떻게 됬냐며, 흥분된 목소리로 물어봤던 의외로 많이 자상한 그런 동생이야.

나도 "너도 엄마아빠 많이 사랑해. 존경하지말고 사랑. 알지?" 를 마지막 인사로 하고
차를 탔어. 앞좌석에 탄 엄마가 창문을 열어서 아직 들어가지않고 있는 윤이에게
식탁에 국수 있으니까 국수 먹고 학교가란 말을 했고, 윤이가 원채 국수를 좋아하는 지라
앗싸~라고 말하는게 들렸어. 난 뒷좌석에 앉아서 동생을 계속 봤고, 동생도
차가 주차장 밖으로 빠져나갈때까지 아파트 문앞에 있다가 들어가더라.

날씨가 좋았어. 그래서 척추가 있는 몸 정중앙 가장 구석에 있던 이제 간다, 가면 다시
전쟁이다. 라는 두려움이 그날의 들뜬 기분만큼 강하지는 않았던 거 같애.
전체적으로 그랬어. 아마도 일본에 얼마동안 엄마가 함께한다는 안도감이 컸겠지?

김해공항에 다와가는걸 풍경을 보고 알기시작했을때쯤 나는 국내선 터미널이 어디인지
엄마한테 물어봤다. 엄마도 너가 얘기한대로 얘기하더라, 국제선이랑은 다를거라고.

"희연이가 거기서 일해. 오늘도 일하니까 가면 볼수 있을텐데." 라고 내가 말해놓곤,
엄마랑 아빠가 입을 모아서 "그럼 들렀다 가라." 라고 하자마자 다시,
"아냐, 그냥 갈래….…" 라고 내가 잘라 말해서 두분이 니는 뭐그렇게 삐딱하노, 라고
핀잔을 줬던 기억이 나.



나도 그렇고 너도, 아마 서로 눈이 마주쳤다면 우린 울었을거야.


적어도 나는 그럴거라 확신이 들었거든. 울 일도 아닌 일에 너가 일하는 데서
피해 주는 것도 싫었고, 너와 내게 앞으로 한동안 만나지 못한다는 걸
일깨우는게 싫었어.  그나마 마지막으로 우리가 만났던 날 너가 아주 성숙해보여서
그 모습이 오늘 보고 가지 않더래도 괜찮을거라는 믿음을 줬어.

어차피 정말 오늘이 마지막일것도 아니고, 결과적으로 스카이프로 잘만 화상통화를 하니,
그날 울며 작별을 했다면 진짜 낯부끄러운 기억이 됬을거 같다.


국제선 터미널로 바로 가서 핫도그를 사먹은 다음에, 아빠와는 거기서 작별을 하고
엄마와 난 탑승장으로 들어갔어. 아빠랑의 이별도 미국으로 떠날때만큼 슬프진 않더라.
아빠도 웃으면서 보내줬고. 아마 서울에서 첫자취도 2년동안 별탈없이 보냈고,
이번에도 길어도 2년이니까, 나도 그렇고 가족도 떨어져 지내는데에 이제는 익숙해진거 같아.



너는 내가 대견한거 같다지만, 나는 그냥, 운이 좋게 거기에 있었을 뿐이야…


일본갔다 미국갔다 이런것도 다 내 의지도 아니였을뿐더러,
지금 학교다니는 것도, 그 많은 편입생중에 나혼자 외국인이였고,
모두가 밟는 절차를 똑같이 밟았고, 아마 어느 누가 신청을 했더래도
다 됬을거라고 생각을 해. 단지 아무도 하지않고, 나는 했다는 차이일 뿐이지.

모든일은 지나고 나면, 결국 내가 해온 일, 하지않은 일로 나뉘어지잖아.

그러니까, 지금처럼 하루하루 너가 하고싶은게 뭔지, 해야하는 일이 뭔지
차곡차곡 하다보면 정신을 차려보니 너가 있어야할 곳에 그냥 운이 좋게 있게 되지않을까?

맞아, 의식하지말고, 정신없이 하고싶은 것만 하이에나처럼 찾아서 하는거야.

정신없이!






엄마를 포함한 가족이란게, 참 무서운 사람들이지.

나는 어느 순간 엄마와 아빠, 할머니를 아주 객관적으로, 그와 동시에 혈연으로도
볼 수있게 되었어.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미국에서 돌아올 때 쯤부터 였던 거 같아.
나의 엄마이자 아버지. 그 이전에 이런 인생을 살아온 여자. 이런 인생을 살아온 남자.

나도 너처럼 가족들끼리 여행하는 걸 싫어했었어.
겉과 속이 다른 여행같았거든. 정말로는 저렇게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왜 여행시즌만 되면 남들과 똑같이 어디를 가려고 하는 거지? 정말로 우리가 그렇게
행복한 가족인가? 그런 모순된 우리 모습이 너무 싫었거든.

그런데 잘은 모르겠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많은 희생을 하며 살아왔더라구.
어느날 생각을 했지. 이 두사람은 내가 자기들 사이의 아이라는 진실 하나만으로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구나.

그런데 나는 왜 그까짓 여행 거짓으로 웃음지어가며 즐거운 척 하지못하지?


내게 가장 큰 변화는 가족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건 내가 타인에게 기꺼이 하는 희생을
가족들에게도 너그러이 할 수 있게 된 점이야.

내 엄마, 내 아빠. 내 동생.
이러면 이해를 하고 싶지않게 되. 계속 미워지게 만 되. 왜냐면 아무리 미워해도
어차피 가족이니까 벗어날 수 없다는걸 알거든.


그런데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내 엄마라 보지않으면, 너무너무 싫은 행동들도
그래, 이 여자가 여태껏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정도도 하지못할까. 라고
너그러워지더라고.


가족이면 당연히 사랑이 있고, 행복하고 단란한 것이라는 생각은 정말 틀린 생각같아.

가족마저도 서로 노력해야하는 거 같애. 연인사이처럼, 친구 사이처럼.
엄마되는 사람도, 아버지 되는 사람도,그들의 자식들도.
서로서로 지킬것은 지키고 어느 두사람이 삐걱거리면 다른 사람이 노력을 하고.
그 어떤것도 아무것도 하지않은 채 당연히 영원하게 지속되는 것은 없는거 같아.





그런데 내가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아마 네 여수엑스포를 읽어서 그런가보다. 가족들끼리 여행이야기이다보니 생각났네…